5주차. 크루아상 크랩 샌드위치와 옥수수 크림스프

       




햇살 좋은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때에는 갑각류 가재나 게살을 넣은 샌드위치가 생각난다. 든든하고 맛난 빵과 게살 혹은 가재살 등 해산물 단백질과 맛있는 토핑까지 여름이 다가오면 브런치 레스토랑의 인기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미국 동부와 서부의 여름 식사에서 필수품인 갑각류 기반의 샌드위치는 일반적으로 마요네즈 베이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추와 토마토를 얹은 차갑게 제공하는 여름날 매우 상쾌한 샌드위치가 된다. 중량 100그램 이상의 큼지막한 크루아상에 버터를 바르고 싱싱한 토마토와 곱슬곱슬한 무늬가 돋보이는 햄버거용 상추라고 불리는 곱슬이 상추를 얹고, 그 위에 싱싱한 게살 혹은 가재살을 마요네즈에 버무려 올리면 완성이 되는 크랩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여름 샌드위치의 가장 맛있는 자리에 위치한다. 


1. 맛있는 재료이야기          


1) 유럽의 아침식사 크루아상     



크루아상은 버터 풍미와 함께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조직이 바삭한 식감을 만들어내는 빵으로 페이스트리의 하나이다. 크루아상은 초승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다른 페이스트리와 버터와 이스트를 넣은 반죽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다. 한국에서는 크로아상, 크로와상, 크라상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외래어 한국말 표기 명칭으로는 ‘크루아상’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작 되었지만 현재에는 프랑스에서 더 유명해졌다. 1900년대 이전의 어떤 프랑스 요리책에서도 오늘날의 크루아상을 위한 인쇄된 요리법을 찾지 못하지만 1800년대 후반에는 프랑스에서 아침 식사의 필수품으로 언급될 만큼 충분히 지위를 확립했다. 크루아상의 기원인 키펠(kipferl)은 오스트리아에서 적어도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다양한 형태로 판매 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프랑스 루이 16세에게 시집 온 마리 앙뜨와네트가 오스트리아의 제빵사들이 프랑스에 전파했다는 설도 있다.   


     


1909년 프랑스 크루아상을 판매한 빵집 ‘Boulangerie Viennoise’ 왼쪽은 베이커리, 오른쪽은 찻집


현대 프랑스 크루아상의 탄생은 빵집 ‘Boulangerie Viennoise’이 키펠(kipferl)과 비엔나 식빵(Vienna loaf)를 포함한 오스트리아 비엔나풍의 빵집은 ‘Boulangerie Viennoise’이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프랑스에 영향을 주며 탄생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키펠이 프랑스어 ‘초승달(크루아상)’ 모양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며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이름이 되었다. 현재 크루아상과 우유를 첨가한 커피는 많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유럽 국가에서 대륙식 아침 식사의 표준이 되었다. 반면 독일, 북유럽 등지에서는 식문화가 달라 크루아상보다는 호밀 빵이 수요가 많다. 

크루아상은 반죽에 버터를 바르고 여러 번 연속으로 말아서 접은 다음 라미네이팅기법(반죽-버터-반죽이 교차)으로 불리는 반죽을 넓게 펴서 얇은 조직을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페이스트리 특유의 반죽이 겹겹이 쌓인 바삭한 질감이 된다.

초승달 모양의 빵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며, 크루아상은 오랫동안 오스트리아 와 이탈리아, 프랑스 제과점의 필수품이었다. 현대적인 크루아상은 20세기 초반에 개발되었고  1970년대 후반 공장에서 냉동 성형된 냉동생지가 개발되면서 구미와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비숙련 노동으로 갓 구울 수 있는 빵이 되었다. 특히 미국식 패스트푸드 체인인 La Croissanterie체인은 크로와상 대중화에 촉매제가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판매되는 크루아상의 30~40%가 냉동 반죽으로 구워진다고 한다.      


2) 가난한 노동자의 음식 ‘바다 가재(Lobster)     


바다 가재는 로마시대부터 요리법이 전해 내려오며, 유럽인들에게는 지중해와 북유럽의 해안가의 마을에서 잡히는 해산물로 르네상스 시대의 플랑드르 화파의 정물화에서도 보이는 귀한 식재료였다. 현대에 가재요리는 최고급 요리로 인식되지만 식민지 시절의 아메리카 대륙에서 운명이 바뀐다. 유럽인들이 초기 미국에 정착하던 시절, 미국 동부의 메인주 바다 가재는 천적이 없는 조건으로 생산량이 넘쳐나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의 역할 뿐만 아니라 물고기 미끼, 농작물의 비료로 사용할 정도였다. 검푸른 파란색의 절지류 거미처럼 생긴 모양은 '바다의 바퀴벌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Lobster의 어원인 Loppe는 영어의 고어인 '거미'를 뜻한다. 미국 식민지 시절 바다 가재는 풍부한 생산량과 싼 가격으로 인해 노예들의 식량으로, 또한 독립 전쟁 때는 영국군 포로 수감자를 위한 식량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이 시기의 랍스터를 먹는 행위는 빈곤의 상징이었다. 메사추세츠주의 노동 계약서에는 '일주일에 3번 이상 랍스터를 배식으로 주지 않는다.'가 명기될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내륙에서는 바다 가재가 생소한 식재료였고, '랍스터 통조림'이라는 새로운 식품으로 등장하며 바닷가재는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고, 미국 내륙의 새로운 해산물 단백질 공급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철도가 속속들이 개통되고, 미국 동부의 새로운 식사 메뉴로 바닷가재가 등장하며 바다 가재는 인기 있는 메뉴였고, 부유한 사람들은 동부에 도달하여 랍스터를 프렌치풍한 정식 메뉴로 즐기기 시작했다. 통조림과 고급 해산물 메뉴로서의 시장과 공급의 확대는 소비를 촉진하게 되고 더 많은 바다 가재가 소비되면서 가격은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랍스터의 가격은 점점 상승하여 세계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고급 음식의 반열에 올라 오페라를 관람한 후 먹는 서퍼(supper, 늦은 저녁 정찬)의 위치에 오릅니다.



1891년 미국 바다가재 통조림 홍보 포스터


2차 대전이후, 바다 가재는 고급 요리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영화배우들과 록 펠러 등 사회 인사들이 고급 요리로써 바다 가재를 소비하며 오늘날에도 비싼 가격을 자랑하며 고급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오른다. 바다 가재가 고급 요리가 되기까지는 물류의 발달과 식품의 산업화, 수요 공급의 법칙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특히 미국 동부의 바다 가재가 유명한데, 미국 동부 메인주(Main state) 바다 가재 산업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3) 백작의 고민이 샌드위치의 역사를 시작하다.  

   

샌드위치 형식의 음식은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원정에 대한 기록에도 존재하고, 로마 시대에도 빵 사이에 고기를 끼운 요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유럽인들에게 빵이라는 음식은 주로 양손으로 뜯어먹거나 딱딱한 빵은 칼로 잘라서 고기와 함께 먹는 음식이어서 한손으로 먹는 샌드위치라는 음식의 형태가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샌드위치는 자른 빵 두 장 사이에 재료를 넣어 먹는 형식을 이야기한다. 이 간단한 형식의 음식은 시작은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야 대중화 되기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샌드위치는 1762년 영국에서 시작된다. 영국의 귀족인 존 몬테규(John Montagu)백작은 트럼프 도박을 좋아했는데, 카드 테이블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도박꾼으로 유명했다. 오늘날에 알려진 ’샌드위치‘는 그의 작위명이다.



John Montagu, 4th Earl of Sandwich


어느 날 그는 식욕을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날 필요 없이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주방에 요청했다. 그의 요청대로 빵 두 조각 중간에 고기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주방에서 가져왔다. 다른 사람들도 "샌드위치와 같은 걸로 주시오" 라고 하면서 샌드위치라는 메뉴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샌드위치는 영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샌드위치가 미국에 도착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 샌드위치 레시피는 1815년  미국 요리책에 실렸다. 미국은 대공황동안 샌드위치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뉴올리언스에서 상징적인 포보이 샌드위치(Po'Boy)가 만들어졌다. 파업 중에 돈이 없는 노면전차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먹이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샌드위치는 미국 문화의 중심에 들어선다. 

이후, 샌드위치는 미국인 노동자들의 점심 필수품이 되고, 다양한 토핑을 가미한 여러 가지의 샌드위치가 발명되면서 미국인들의 점심이 되었다. 오늘날 가장 많이 판매되는 샌드위치는 햄버거 샌드위치이다.   

       

2. 샌드위치와 온도감을 위한 따듯한 스프와 캠벨 스프 이야기     


농도가 되직한 퓌레 수프는 샤를 5세의 요리장이었던 기욤 티렐의 중세 요리책 "르 비앙디에"와 "르 메나지에 드 파리(파리의 가정부주)"에도 기록되었다.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그랑 퀴진의 시대 프랑스 요리에서 인기를 얻었다. 수프를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밀가루와 버터를 섞은 루(roux)에 크림을 가미한 크림스프는 위대한 요리사인 앙토넴 카렘으로부터 정립 되었다. 새롭고 화려한 음식과 호화로운 음식의 시대에 풍부하고 버터 같은 풍미와 벨벳처럼 매끄러운 질감의 크림스프는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프랑스 음식의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은 세계화 되기 시작하고 미국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20세기, 산업화된 미국의 식품산업은 Campbell's 식품회사에 의해 크림수프는 대중화되었다. 

1869년에 창립되어 보존식품 및 즉석식품 제작하여, 초기에는 통조림에 든 각종 보존식품(야채, 육류 등)을 제작 판매하였으며, 이후 캔을 개봉해 가열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수프 등의 즉석식품류를 개발해 판매하였다.


Andy Warhol. Campbell's Soup Cans. 1962


1897년 캠벨사의 Dorrance박사는 농축 수프를 발명했다. 포장, 운송 및 보관 비용을 절감하면서 완제품 비용이 온스당 1페니에 불과했다. 이후 캠벨사는 1900년대 초에 이미 20가지 이상의 종류의 농축 수프 통조림이 판매한다. 세계 대전을 거치며 산업 현장에서 일하게 된 바쁜 주부들에게 캠벨은 인기 상품이었다. 1934년 버섯 크림 스프, 1990년에 브로콜리 크림스프까지 캠벨사는 크림 스프를 대중화 하는데 성공하며, 20세기 식품 가공 산업의 아이콘으로 등극한다. Campbell 브랜드 제품에 사용되는 고전적인 빨간색과 흰색 캔 디자인은 미국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팝 아트에서 앤디 워홀(Andy Warhol)의 Campbell's Soup Cans 판화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Campbell Soup Company는 미국의 인수합병을 통해 미국에서 가장 큰 가공식품 회사 중 하나로 성장한다.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서도 판매되는 야채 과일 쥬스인 V8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파게티 소스인 프레고(Prego) 토마토 소스도 캠벨사 제품이다. 

크림스프는 스프의 대명사로 다양한 식재료와의 조합으로 현대의 식탁에 오른다. 버섯, 브록콜리, 아스파라거스, 옥수수, 단호박 크림 스프등이 유명하다.                  




Croissant Crab Sandwich





재료     


100g 무게의 큰 크루아상

얇게 썬 토마토 2장, 곱슬이 상추 2장     

게살 마요네즈 무침 

게맛살 120g

다진 양파 50g 

삶은 달걀 1개

마요네즈 1 큰술, 머스터드 1티스푼, 설탕 1티스푼

소금, 후추

브랜디 몇 방울(선택 사항)          


만들기     


1. 게살을 물기를 제거한 다음 큰 조각으로 쪼개서 큰 그릇에 담는다.      

2. 다진 양파와 으깬 삶은 달걀, 마요네즈와 머스터드를 잘 섞는다.      

3. 소금, 후추, 설탕으로 입맛에 맞게 간을 한다.     

4. 크루아상의 양면을 노릇하게 구워서 살짝 식혀준다.     

5. 게살 무침을 크루아상에 넉넉히 올리고 뚜껑을 덮고, 꼬지로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