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농업혁명과 가축화

농업혁명과 가축화


문자(writing system)의 역사는 인류 역사의 총량


앞장에서는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선사시대의 우리 인류 조상들의 수렵과 채집, 그리고 선사시대의 미각적 취향의 진화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번 장은 하바나 초원을 벗어난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농경과 가축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부터의 미각의 발전을 살펴보기로 한다. 

현대의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문자의 기록은 최초 문자 문명이 시작되었을 때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말을 하는 능력과 수화를 주고받는 상호 교감하는 능력은 인류의 가장 큰 특징으로 체계적인 교육 없이 일반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문자는 발언과 동시에 사라지는 구어(口語)의 한계를 보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자는 많은 변화를 거듭했고, 나아가 문자 기호가 구어를 나타내면서 문자 체계가 중대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자로 소통하는 일은 매우 까다로워서 언어를 상징화하여 문자를 만드는 작업을 거치고,  체계적인 교육과 학습을 통하여 후대에 전달되어야 했다. 문자는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글자 기호 체계로 지식과 문화적 기술의 효율성이 결합된 인류 진화의 정점이다.  

왼쪽. 점토판 위에 눌러 쓴 후 점토판을 굽는 형식의  설형문자(Cuneiform writing).  오른쪽. 설형문자로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


발언한 내용이 정확히 인코딩 된 정보 문자로 전달되어 다른 사람이 정확하게 문자를 보고 다시 정확하게 발언하기란 쉽지 않다. 문자는 서로 간의 약속과 정확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과정으로 사전에 많은 교육으로 단어와 정확한 단어의 정확한 정보를 이해하여야 가능하다. 쉽게 이해하자면 우리가 외국어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문자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이해, 단어마다의 정확한 발음 그리고 긴 단어의 나열의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등이 필요하다. 초기 문자를 만들었을 때 문자와 언어는 나와 다른 문명화된 사회의 문자가 의미하는 공통의 약속된 언어를 상호 간에 정하는 긴 작업이다. 

최초의 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로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같이 문자에 의미를 담은 문자였으나, 시간이 가면서 음으로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문자로 발전하게 된다. 이 표음문자들은 페니키아 문자로 발전하고 그리스 문자가 되어 오늘날 알파벳이 되어 서구인들의 문자가 되었다.

문자가 개발되고 나서 인류는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문화화와 사회화를 달성하여 문명을 창조한다. 문명은 문자를 통해 문화의 규범화시키고, 누적되고 발전하게 된다.  문자 체계는 역사를 기록하고, 중요한 사건을 기록할 수 있었다. 달력을 만들고, 다양한 정보화된 지식들을 후대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수렵채집 시대의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식이 활동과 구애활동 등에 한정되었지만 문자의 발명과 농업 혁명, 가축화로 인해 이전보다 식량의 과잉 공급되는 식량의 잉여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인류의 지식을 형태가 있는 방식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불, 바퀴와 함께 인류 3대 발명품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문자를 통해 기록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본격적인 문명의 역사 시대가 대두되게 한 가장 본질적인 원인이다. 


쟁기로부터 시작된 농업혁명


쟁기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의 하나이다. 쟁기는 가축화된 동물의 힘과 연결되고, 바퀴의 효율적인 구조와 철을 이용한 소재의 혁명까지 이어져 농지를 개량하는 가장 우수한 농기구로 발달한다. 쟁기는 인류의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식량생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An ox-drawn plough posed with farmers and children, Fujian province,1900s

대부분의 식물은 공기 중의 질소, 기체 상태의 질소는 사용할 수가 없고, 질산염 형태로 존재하는 흙속의 질소만을 사용하게 된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식물들과는 달리 제한된 땅에 밀집하여 농작물을 키우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밀집된 환경의 흙에 존재하는 무기염류들과 질산염들, 영양분의 고갈은 빠르게 일어나고 토양이 산성화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쟁기질을 통해 산성화 된 토양과 지하 20~30cm 아래의 영양분이 많은 토양층을 바꾸어 주어 토양을 재충전한다.  또한 쟁기는 20cm 이하의 토양 아래의 지반을 느슨하게 하여 곰팡이균의 생성을 돕는다. 이를 통해 물과 비료의 산소 투과량을 높여 유기물질로의 부식을 가속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쟁기질은 일반적인 잡초가 자라는 땅을 농경지로 바꾸는 작업이다. 농사를 지은 땅의 지력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삽이나 괭이 질로도 가능하지만 연속 동작으로 땅을 갈아엎어주는 형태의 쟁기의 발명은 압도적으로 노동력의 효율성을 높이게 된다. 최초 사람이 끄는 형태의 쟁기질에서 가축화된 소나 말을 이용하면서 효율성은 더 높아지게 되고 탄수화물 중심의 농업 생산성의 증대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초기 쟁기는 사람이 구동하였지만 곧 가축화된 황소가 끌기 시작하고, 말과 노새 등 다른 여러 지역과 기후의 특성에 맞는 동물들이 끌게 되었다. 근대 산업 혁명 이후 기계화된 트랙터가 나오기 전까지 농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신석기시대의 쟁기는 약 2000년의 기간 동안 사람이나 동물의 힘에 의하여 구동되었다. 단순해 보이는 농기구이지만 설계의 노하우 없이 쟁기날의 각도 등을 잘 설정하지 않으면 사용이 용이하지 않다. 오늘날에도 쟁기는 소나 말의 힘이 아니라 내연기관의 힘으로 움직이는 트랙터로 쟁기는 사용되는데, 쟁기 자체의 중요성에는 변함이 없을 정도로 농업 혁명의 유산이다.



새로운 에너지원 _탄수화물의 탄생  


레슬리 화이트는 기술진보(에너지를 활용하고 통제하는 능력)가 문화의 발전 수준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규정했다. 문화 진화의 기본 법칙은 연간 1 인당 이용되는 에너지의 양이 증가하거나 에너지를 작동시키는 도구 수단의 효율성이 증가함에 따라 문화가 진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화이트의 법칙에 따르면 문화의 상대적 진화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포집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에너지 소비)으로 인류문명 발달을 5단계로 주장한다.      

첫째, 인류 자신의 근육 에너지를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단계이다.  둘째, 길들여진 가축의 동물 에너지를 사용하는 단계이다. 셋째, 농경을 바탕으로 한 식물에너지를 사용하는 단계이다. 넷째,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천연자원 에너지를 사용하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단계로 나눈다. 

     

C = ET

E는 연간 1 인당 소비되는 에너지의 척도이고, T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기술적 요소의 효율성을 측정한 것이며 C는 문화 발전 정도를 나타낸다. 인류의 발전에 에너지 총량을 증가시키는 5단계 중 농경과 가축을 이용한 에너지의 단계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신석기시대에는 수렵과 채집을 벗어나 최초의 농부들이 탄생했다. 세계 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쟁기와 가축을 이용해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중동, 중미 지역이 고대 농업의 시초 3대 지역이라 불린다. 중국에서는 쌀을 재배하기 시작하고, 중동에서는 밀과 보리를 중미지역에서는 옥수수와 콩과의 식물을 재배했다. 이외의 지역에도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도 11개 지역의 독립적인 원산지 중심의 개별적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문자와 결합된 농업문명이 발생한다. 

농업혁명은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고대 문명으로 발전하는 원동력을 가지게 되는데 아시아는 고대 중국의 문명이 되고, 고대 이집트 문명과 인더스의 밸리 문명으로 성장한다.  


크리스티안 톰슨은 농경과 가축화가 시작된 문명의 태동시기를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의 ‘3세기 시대(three-age system)로 명명했다. 신석기시대 이후로 식량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일이며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을 신석기 혁명이라 부른다. 농업을 시작한 신석기시대의 인류는 제한된 지역에 농사라는 기술적인 재배방식을 통해 잉여의 식량을 생산한 최초의 세대였다. 식량을 찾아 이동이 필요 없이 제한된 한지역에 정착해 살 수 있게 만들어준 1차 산업이었다. 

우리 선조들이 수렵과 채집의 자유로운 생활을 버리고 농업을 선택한 이유를 인류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곡물의 뛰어난 저장성이다. 식량을 보관하기에는 건조된 곡류는 최고의 저장성을 제공한다. 상하기 쉬운 육류나 생선류의 저장은 염장이나 훈연 등 비싼 조미료나 그 당시에는 최고급 기술인 훈연 등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건조된 곡물은 다음 계절을 위한 씨앗이었고, 최고급 탄수화물로써 건기나 우기에 인류에게 안정적인 식량자원으로 제공되었다. 둘째, 집단과 사회를 이루기에 유리하다. 농업의 막대한 생산성은 사회를 이루기에 필수적인 인구를 부양하는데 유리한 이점을 지닌다. 농업으로 인한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면서 출산율이 증가하고,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부족 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농경을 통한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은 충치와 당뇨라는 질병을 낳았고, 영양학적인 불균형을 초래하여 평균 신장이 감소하기도 하였다. 더 많은 잉여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하여 노동시간은 늘어났으며, 사유재산의 개념과 잉여 농산물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계급을 탄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탄수화물의 생산과 농업을 계속 이어 나갔다.      

앨런 아우트램은 '미각의 역사'에서 농업이 발생한 원동력을 미각의 관점에서 3가지로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인류는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정말로 좋아했으며, 비록 단조로운 식단이었지만 전적으로 만족했다.

둘째, 사실상 미각의 취향이 오늘날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맛을 신경 쓰지 않았다.

셋째, 단조로운 음식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경제적인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했다. 

미각의 관점에서 볼 때 수렵과 채집의 생활보다는 다양한 미각적 취향을 만족할 수는 없지만, 대량으로 생산되는 탄수화물들(쌀과 밀, 옥수수와 콩)은 새로운 미각을 배제하면서까지 선택할만한 이유였다.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로 인류는 곡물의 뛰어난 저장성을 바탕으로 집단이나 사회로 발전을 일으키기에는 유리하므로 생존에 유리한 측면을 가지게 된다. 정착을 통한 출산율의 증가는 사회와 문명화를 이끌고, 인구밀도를 감당하기 위한 사회적 윤리 및 정치 시스템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길들여진 동물들_가축화


일반적으로 인간 중심적 사고에 의해 동물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야생동물(wild animal) 그리고 가축화된 동물(domestic animal) 그리고 애완동물(pet)로 나뉜다. 2000년대 현재 지구 상의 육상동물 중 인간과 가축, 그리고 애완동물들이 97%이고, 야생동물은 3%만이 존재한다. 농업혁명을 시작한 신석기시대만 하더라도 이 비율은 반대였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약 1만 년 전 현생 인류의 인구는 약 1만 명 이하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지구 상의 인류는 번성하여 2019년 현재 77억이라는 인구수와 250억 마리의 가축화된 동물과 애완동물들을 거느리고 살고 있다. 



Domestication Timeline


인류의 작물재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축산업도 가능해졌다. 가축화된 최초의 동물은 4만 년 전 개가 최초라고 전해진다. 분류학적으로 보자면 개와 늑대는 분류학적으로 속, 종이 완전히 일치하는 같은 종(species)이다. 개의 조상이었던 늑대가 자연선택 또는 인위적인 품종개량을 통하여 인간의 삶에 동화되었다는 가설에 무게가 실린다. 앞장에서 설명한 대로 늑대의 사냥방법인 지구력 사냥이 인간의 사냥과 같았고, 개의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이용하여 사냥감들을 추적할 수 있었다.  

수많은 야생동물 중 개와 고양이 등 애완용을 제외한 인류 문명 발달에 크게 기여한 평균중량 45kg 이상의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단 7종류로 소, 돼지, 말, 양, 염소, 사슴(순록), 낙타뿐이다. 7종류를 제외한 지구 상의 수많은 나머지 종들은 가축화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다음은 동물이 인간의 가축이 되기에는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다. 

첫 번째, '효율적인 사료(Efficient diet)'-가축화를 위하여 인간과 다른 사료를 먹는 것.

사자와 호랑이를 가축화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고기를 생산하기 위하여 고기를 먹어야 하는 가장 비효율적인 육류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의 사료 전환율(FCR, feed conversion ratio)은 다른 동물들보다는 낮지만, 인간이 먹지 않는 풀(셀루로오스)을 사료로 이용, 반추위라는 독특한 소화기관으로 소화를 하여 당류로 소화하고 질소 화합물을 만들어 단백질을 생산한다. 오직 반추동물들만이 풀을 먹고 고기와 우유를 생산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고성장 속도(Quick growth rate)' - 고기를 얻기 위한 빠른 성숙률은 가축화된 동물의 중요한 조건으로 돼지나 닭이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로는 '억류된 상태의 사육화(Ability to breed in captivity)' - 가축화가 된다는 것은 야생상태의 동물을 잡아서 길을 들이는 개념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가축화가 된 상태를 이야기한다. 

네 번째로는 '가축의 온순한 성향(Pleasant dispositio)'  - 가축화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주위에서 습관과 습성이  인간에게 위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다섯 번으로는 '야생성에 대한  성향(Tendency not to panic)'- 우리에 갇혀 있을 때 쉽게 패닉이 오지 않는 동물이 가축화되기 수월하다.

마지막으로 '계층적 구조(Social structure)' - 사회적 구조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집단생활에 온순하게 적응하며 인간에게 온순한 동물들이 선택된다.


신석기시대부터 노동력을 제공하는 몇몇 가축을 제외하곤 가축은 인류가 고기를 먹기 위한 수단으로 길러졌다. 수렵채집 시절 고기를 사냥하면 며칠 되지 않아 상한 고기를 먹는 것과 달리 가축화된 동물은 신선한 고기를 제공했다. 인류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살될 때까지 고기의 상태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걸어 다니는 고기 저장소'였다.  

애완용 동물의 대표적인 동물인 개가 존재한다면, 가축으로서의 대표주자는 단연코 소이다.  라스코(Lascaux) 동굴에서 소를 사냥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는 인류가 선사시대에도 소를 사냥하여 먹었음을 증명한다. 소는 인류에게  중요한 먹거리인 단백질을 제공해온 고마운 동물이다. 인간이 트랙터를 발명하는 19세기 이전까지 경작에 이용되는 소의 힘은 농사에 이용되기에 충분히 강하며, 인간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온순한 성격으로 인간에게 농업의 결과물들을 안겨주는 소중한 동물이었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소를 비롯한 반추동물들은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2차 상품혁명이라고 알려진 상품들 우유, 양모,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반추 소화를 하는 가축은 고기를 제공하는 1차 산업에서 우유와 버터, 치즈와 요구르트를 생산하는 2차 산업인 낙농산업으로 발전한다. 



석기시대의 조리행위 토기


토기는 점토로 만들어지고 손으로 성형하여 열로 구워진 물건으로 구성된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수공예품이다. 가장 초기의 토기 형태는 점토로 만들어져 질그릇 형태로 600°C 정도의 낮은 모닥불 온도에서 구워졌다. 토기는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보관 용기 역할을 했으며 조리된 음식을 담기 위한 접시 역할을 했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토기는 다공성이기 때문에 액체의 저장 및 심지어 식수를 담기에도 이용이 제한적이었다. 


Pompeii amphoras

토기의 용도는 그 크기에 따라 나뉘는데 대형 토기는 음식 저장용, 중형 토기는 취사용, 소형토기는 식기의 용도로 음식을 준비 과정에 각각 사용되었다. 초기의 토기는 일반적인 평평한 그릇과 다르게 밑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로 땅을 파서 밑부분만 묻어 세우거나, 아궁이 같은 구조물로 지탱하여 사용했다. 현대의 인류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초기 인류가 순수한 대지 위에서 생활할 때는 땅에 묻어 고정하는 형식인 빗살무늬 토기는 유용한 모양이었다.  이후 빗살무늬 토기는 점점 바닥이 평평한 민무늬 토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거친다.  토기를 굽는 가마의 발달로 토기를 굽는 가마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자기와 유약을 바른 도자기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에게 토기가 확산되면서 음료를 저장할 수 있는 암포라(amphora, 항아리)에서 맥주를 발효하거나, 와인을 생산하고 술을 제조할 수 있는 저장능력이 생겨났다. 또한 토기는 도자기로 발전하면서 문명화된 도시 제국의 식탁의 부와 권위를 제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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