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1787~1851,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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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guerreo Type
다게르는 사진 발명가로 알려진 프랑스의 화가이다.
건축과 회화를 공부한 후, 파리 오페라 극장의 무대미술가를 거쳐 파리 · 런던에서 디오라마(diorama)관을 개업 했다.
다게르의 디오라마 관
당시 다게르는 스위스 알프스산과 같은 웅대한 자연의 장관을 대형의 투명한 스크린에 그린 그림과
특수 조명을 이용해서 보여주는 디오라마(diorama)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었다.
1829년 디오라마에 쓰이는 풍경화의 화상을 손으로 쓰지 않고 화학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의도에서 연구에 착수했다.
니엡스와 1829년 제휴하여 니엡스가 발명한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를 다시 개량, 니엡스의 사망 이후로도
사진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1837년 다게레오타입(Daguerreo Type, 은판사진법)라는 독자적인 사진현상 방법을 발명했다.
still life of plaster casts on a window ledge above(1837) /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Shells and fossils(1839) /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좌)니엡스의 헬리오그래피(1826), (우)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1838)
다게레오타입은 은판을 수은 증기에 쐬어 이미지가 드러나게 한 뒤 그 원판을 소금물에 담가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니엡스의 사진보다 선명한 영상을 얻으면서도 촬영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다.
기존 8시간이었던 노출시간을 20분 정도로 줄인 획기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상품화할 자금이 없었으므로 1839년 과학자 출신의 정치가인 F. D. 아라고를 통해 연금과 교환 조건으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그 기술내용을 공개했다. 이 기술은 공식적인 최초의 사진술로 인정받았으며
프랑스 정부는 이 기술을 즉시 사들여 전 인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다게레오타입을 최초의 사진술이라고 인정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견도 분분하다.
니엡스가 최초라는 의견도 있으며 영국에서는 자국의 수학 · 물리학자였던 탈보트(Talbot)를 사진술의 개척자로 내세운다.
니엡스의 공로를 덮어버린 다게르의 인간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차치하고서라도 다게르는 잠상이 현상에 의해 나타난다는 현대 사진술의 기초 원리를 확립한 인물이다.
또한 은판을 최종적으로 소금물에 담가 이미지를 정착시킨 방법은 현재의 정착 방법(광선에 의해 상이 파괴되는 것을 보호한다는)의 시초가 됐다.
즉, 실용적인 사진술의 시초이다.
[The Daguerreotype]
https://youtu.be/d932Q6jYRg8
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1787~1851,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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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guerreo Type
다게르는 사진 발명가로 알려진 프랑스의 화가이다.
건축과 회화를 공부한 후, 파리 오페라 극장의 무대미술가를 거쳐 파리 · 런던에서 디오라마(diorama)관을 개업 했다.
다게르의 디오라마 관
당시 다게르는 스위스 알프스산과 같은 웅대한 자연의 장관을 대형의 투명한 스크린에 그린 그림과
특수 조명을 이용해서 보여주는 디오라마(diorama)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었다.
1829년 디오라마에 쓰이는 풍경화의 화상을 손으로 쓰지 않고 화학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의도에서 연구에 착수했다.
니엡스와 1829년 제휴하여 니엡스가 발명한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를 다시 개량, 니엡스의 사망 이후로도
사진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1837년 다게레오타입(Daguerreo Type, 은판사진법)라는 독자적인 사진현상 방법을 발명했다.
still life of plaster casts on a window ledge above(1837) /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Shells and fossils(1839) /Louis Jacques Mandé Daguerre
(좌)니엡스의 헬리오그래피(1826), (우)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1838)
다게레오타입은 은판을 수은 증기에 쐬어 이미지가 드러나게 한 뒤 그 원판을 소금물에 담가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니엡스의 사진보다 선명한 영상을 얻으면서도 촬영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다.
기존 8시간이었던 노출시간을 20분 정도로 줄인 획기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상품화할 자금이 없었으므로 1839년 과학자 출신의 정치가인 F. D. 아라고를 통해 연금과 교환 조건으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그 기술내용을 공개했다. 이 기술은 공식적인 최초의 사진술로 인정받았으며
프랑스 정부는 이 기술을 즉시 사들여 전 인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다게레오타입을 최초의 사진술이라고 인정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견도 분분하다.
니엡스가 최초라는 의견도 있으며 영국에서는 자국의 수학 · 물리학자였던 탈보트(Talbot)를 사진술의 개척자로 내세운다.
니엡스의 공로를 덮어버린 다게르의 인간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차치하고서라도 다게르는 잠상이 현상에 의해 나타난다는 현대 사진술의 기초 원리를 확립한 인물이다.
또한 은판을 최종적으로 소금물에 담가 이미지를 정착시킨 방법은 현재의 정착 방법(광선에 의해 상이 파괴되는 것을 보호한다는)의 시초가 됐다.
즉, 실용적인 사진술의 시초이다.
[The Daguerreotype]
https://youtu.be/d932Q6jYRg8